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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생쥐꼴...생애 가장 춥고 배 고팠던 하루

YMCA 제주 자전거 국토순례③ 성산에서 제주항까지 62.2km


전날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침 7시...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 길을 떠났습니다. 모두 비옷을 겹쳐 입고 비에 몸이 젖지 않도록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나섰습니다만 가장 큰 기대는 1~2시간 후에 비가 그쳐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숙소에서 약 2~3km를 달려 제주에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러는 시흥리 해녀의집에서 조개죽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바다내음 가득한 따끈한 조개죽으로 가볍지 않은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는데, 아침 출발 때보다 바람이 훨씬 새게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노끈과 테잎으로 비옷이 바람에 펄럭이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야 했습니다. 


모두 자전거를 타고 빗속으로 출발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오후 4시까지 제주항에 도착해야 육지로 되돌아가는 배를 탈 수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주시를 향해 가는 해안 길은 오르막 구간이 없는 평안한 길이었습니다만, 비와 바람이 문제였습니다. 



비와 바람...자전거 타기 가장 힘든 조건과 마주치다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서쪽, 북쪽, 남쪽으로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면서 달리게 되는데, 특히 서쪽을 향해 달릴 때 강하게 부는 동풍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순간 아주 강한 바람이 불어 올 때는 페달링을 해도 자전거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몸에 딱 맞는 비옷을 입은 친구들은 그나마 바람을 덜 받았지만, 헐렁하고 풍덩한 판초우의를 입은 사람들은 마치 돛을 단 배처럼 바람을 맞았기 때문에 어떨 때는 오르막 구간을 올라가는 것 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저도 판초우의를 입은 사람중에 한 명이었는데 바람이 순간적으로 쎄게 불때 판초우의가 뒤집어 순간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두 두어번 겪었답니다. 


아침을 먹고 제주 해안 절경이 가장 빼어난 성산 ~ 김녕 성세기해변 구간을 달렸습니다만,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 볼 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비옷을 꽁꽁 싸매고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작은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장갑을 낀 손도 젖고 양말도 젖고 엉덩이까지 젖었습니다. 


김녕 성세기해변과 함덕 서우봉 해변 사이 적당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는데 비 바람 부는 날 월정리 해수욕장까지 21km는 왜 그리 멀던지요. 평소라면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2시간도 넘게 걸렸습니다. 해녀박물관에서 휴식을 하지 않고 지나친 것을 1시간 넘게 후회하며 달렸습니다. 



기진맥진 할 때야 휴식지 도착...추워서 오래 쉴 수도 없었다


거센 비 바람에 지쳐 더 이상 못가겠다 싶을 무렵 월정리 해수욕장이 나왔습니다. 앉아 쉬 곳과 비를 피할 수 있는 파고라와 화장실이 있는 평소라면 나무랄데 없는 휴식지였습니다만, 바람을 피할 곳이 없어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따뜻한 물로 끊인 차를 마셨지만 비에 젖은 몸을 녹여주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래 쉬라고 해도 추워서 더 쉴수가 없었지만 초등 5학년 참가자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모두가 바닷 바람을 맞으며 기다렸습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 껴입은 옷만 해도 움직임이 둔 하였는데, 비옷까지 꽁꽁 싸매고 입은 탓에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일도 여간 번거롭지 않더군요. 


비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자전거 타고 오는 동안은 충분히 쉬고 싶었지만, 비에 젖은 몸으로 바람부는 바닷가에 서 있는 것이 더 추워 오래 쉴 수 조차 없었습니다. 핫쵸코로 추위를 조금 달래고 바나나와 쵸코바 같은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잠깐 소강 상태를 보이던 비는 이내 점점 더 굵어졌습니다. 장갑이 흠뻑 젖은 참가자들에게는 위생장갑을 사서 나눠주었습니다만 추위를 막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방수 장갑을  준비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 시간 동안 계속 비를 맞고 달렸더니 더 이상 방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더군요. 




온 몸에 땀나도록 달려도...손 발끝은 시리다


겨울 라이딩은 손과 발이 시린 것이 제일 힘듭니다. 자전거를 타면 온 몸에 열이 나지만 바람과 마주하는 사지의 끝인 손가락, 발가락까지 열이 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좋았던 이틀은 두꺼운 장갑과 양말로 바람과 추위를 잘 견딜 수 있었는데, 장갑과 양말이 비에 젖고나니 그 추위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핸들을 잡고 달리면서도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하면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꿈틀거렸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니 결국 발가락은 감각을 잃더군요. 견디기 힘든 추위를 견뎌내면서 2시간 넘게 약 24km를 달려 삼양해수욕장 인근 '찰스'(식당)에 도착하였습니다.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기 위해 비옷을 벗어야 했는데, 비옷을 벗는 것도 힘들었지만 밥을 먹고 젖은 비옷을 다시 입어야 하는 것이 더 찝찝하였습니다. 찰스 사장님은 여러 번 확인 전화를 하셨더군요. 그 때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계속 자전거 타고 오시냐?"고 물었습니다. 


스물 다섯 명이 식사 예약을 해놨으니 다른 손님을 받을 수도 없고, 만약 비 때문에 못가겠다고 하면 사장님만 낭패를 보게 되니 여러 번 확인하는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 일행이 찰스에 도착하자 일 하는 분들이 모두 나와 젓은 비옷을 벗고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춥고 배가 고팠던지 짬뽕과 공기밥, 돈가스와 공기밥을 먹고도 모자라 전날 밥에 남겨두었던 컵라면까지 모두 꺼내 먹었습니다. 해물 짬뽕과 돈가스 중에 선택해서 먹을 수 있도록 예약을 하였는데, 따로 결제를 하고 돈가스와 해물짬뽕을 둘 다 시켜 먹는 참가자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돈까스, 짬뽕 맛집 '찰스'에서 겨우 기력을 회복하였다


아무튼 비에 젖어 추위에 떨며 들이닥친 성가신 손님들을 찰스 사장님과 식구들이 각별히 챙겨주었습니다. 찰스를 출발하여 제주항까지 가는 길은 마지막 구간입니다. 점심을 먹고 충분히 쉬면서 기력을 많이 회복하였습니다만, 제주시내로 들어가려면 오르막 구간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제주항으로 가는 자전거길은 시내로 들어갈 때 '사라봉'을 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평소라면 가볍게 넘을 수 있는 오르막 구간이었지만 하루 종일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탓인지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르막 구간에서 라이딩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빨리 도착하였기 때문에 서두를 까닭이 없어 천천히 속도를 맞춰 사라봉 구간을 지났습니다. 사라봉을 지나자 탁트인 바다와 제주항이 한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침부터 서둘렀던 덕분에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고도 예상 시간을 1시간 가까이 단축하여 오후 2시 10분에 제주항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렌터카를 반납하고 각자 배낭과 짐을 챙기고 젖은 옷을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 입느라 금새 시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제주항에서 여객선에 자전거를 싣고 고흥 녹동항까지 4시간,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이지만 하루 종일 비와 바람에 지친 탓인지 배 안에서는 차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대에 부풀어 제주로 가던 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요. 녹동항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마산까지 2시간 30분.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3박 4일의 제주 환상 자전거길 종주 일정이 끝났습니다. 


셋째 날 하루 종일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타느라 고생스러웠지만, 오랫 동안 두고두고 나눌 수 있는 제주 자전거 라이딩 무용담이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혼자라면 해낼 수 없는 일, 해내기 힘든 일을 여럿이 함께 하였기 때문에 거뜬히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 돌아 온 진행팀 평가 결과 "봄, 가을에 갈 수 없다면 제주 일주 라이딩은 차라리 겨울 방학이 좋다"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눈과 비만 만나지 않으면 한 여름의 더위 보다는 겨울 추위가 자전거를 타기에 좋다는 것이지요. 겨울 막바지 봄방학...딱 좋은 타이밍입니다. 자전거 타시는 분이라면 따뜻한 제주로 한 번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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