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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약자에게 정의롭지 않다

사람들에게 법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언제일까? <디케의 눈>(궁리 펴냄)을 쓴 금태섭 변호사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서 징역형을 선고 받고 항소심에서 재판장에게 형을 줄여달라고 하소연할 때 혹은 난생처음 부동산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건네는 신혼의 가장에게 실감나는 현실로 다가온다고 한다.


하지만, 후자의 신혼 가장에게는 아직 법이 현실로 잘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전세든 집주인이 부도가 나서 법원 경매가 이루어질 때가 되면 법은 정말로 엄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이건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하늘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절망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당해 봤기 때문에 잘 안다. 지금부터 약 15년쯤 전, 신혼살림을 주택 2층 단칸방에서 시작했는데 아이를 낳으면서 옮겨간 전세 아파트에서 전세보증금 2800만원을 몽땅 날렸다. 전세보증금 2800만원은 우리에게 전 재산이었다. 전 재산을 날린 후 느꼈던 절망감.......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보통 사람들에게 법은 어려운 도구다. 나에게도 법은 어렵다. 하지만 법률가나 학자가 아니지만 내가 잘 아는 법도 좀 있다. 가장 잘 아는 법 중 하나가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왜? 전세보증금을 날려 봤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소비자보호법이나 공정거래법, 노동법은 좀 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 귀에 익고, 촛불 집회 덕분에 '헌법'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돌이켜 보니 내가 아는 법은 대체로 그런 법 때문에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거나 그런 법을 잘 몰라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법들이다. 나만 아니라 사람들이 법을 현실로 절실하게 느낄 때는 대체로 법 때문에 피해를 당하거나 처벌을 받게 되었거나 혹은 손해를 입었을 때인 것 같다.


지금 일하는 단체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노동야학 실무자로 일하면서 노동 관련법을 공부했다. 그 다음 생활법률상담과 소비자상담을 하는 시민중계실에서 일할 때는 소비자보호관련 법률과 주택임대차보호법 같은 법률에 익숙해졌다. 내가 법 때문에 법률전문가를 절실하게 찾았을 때는 대부분 법 때문에 손해를 볼 때였고, 법 때문에 나를 찾아온 사람들도 대부분 법 때문에 입게 된 손해 때문에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법은 멀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


실제로 법률가를 제외하고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법 때문에 손해를 입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해고되어 무효소송을 하고 있거나 교통사로로 피해를 당해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거나 혹은 어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 소송으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법에 밝다.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보면, 장기입원환자들이 법률가들보다 더 뛰어난(?) 법률적 조언을 해주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서민들은 흔히 법이 자신에게서 멀리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법 때문에 공권력을 만나는 것도 싫고, 누군가와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대체로 법률은 힘없는 자신들을 피해자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법을 다루는 기관인 경찰이나 검찰 그리고 법원 같은 곳에는 일생 동안 한 번도 안 가고 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런 바람과 달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법과 마주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법률들은 우리 삶을 아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법은 우리의 생활과 삶 그리고 생각까지 규제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은 법률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디케의 눈>을 쓴 금태섭 변호사는 법이 실제로 적용되는 현장에서는 법을 통해 진실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이 사건들이 드물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법의 여신 디케가 공정한 법 집행을 상징하는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것에만 주목하지 말고, 두건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법을 통해서 진실을 찾는 것은 맨손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금태섭은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진실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항상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그는 두건 뒤에 가려진 디케의 눈은 "찾기 어려운 진실 앞에서 끝없이 같은 질문을 되묻고 다시 생각해보는 고뇌에 찬 눈"일 것이라고 한다. 그는 법을 통해 진실을 찾기 위한 고뇌의 과정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디케의 눈>을 썼다고 한다. 법률가에게 진실을 찾는 일과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적절한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법을 통해 진실을 찾는 것의 어려움


금태섭은 법을 통해서 진실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라쇼몽>을 소개한다. 다케히로라는 사무라이가 아내 마사코와 함께 산길을 가다 산적 다조마루를 만나는데, 마사코는 겁탈당하고 다케히로는 죽은 채 발견된다. 관청에서 이루어지는 신문에 마사코, 다조마루는 서로 완전히 다른 증언을 한다. 목격자인 나무꾼이 등장해서 자신이 본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어느 말이 진실인지 끝내 알 수 없다.


금태섭 말에 따르면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수사나 재판의 목적은 진실을 알기 위한 것이지만,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에는 거의 언제나 '은폐', '축소'라는 의심의 그림자가 따른다는 것이다.


또한 사심 없이 선의를 가지고 수사나 재판을 한다고 하더라도 영화 <라쇼몽>과 같은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고, 직접 사건을 목격하거나 겪은 사람이라고 해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정확히 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결국 진실에 대해서는 항상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지은이는 똑같은 일을 경험한 이해당사자의 진술이 완전히 다른 사례로 사법연수원시절 두 친구가 강간 당할 뻔했다는 여자를 구해줬다가 폭력배로 몰린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초임검사 시절에 경험한 '자전거 교통사고로 죽은 어느 소년의 죽음' 이야기 역시 법률가로서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가 뒤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여러 가지 정황이 있었지만 끝내 무덤을 파내 유전자감식을 하지 않아 실체적 진실을 영원히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법률가로서 진실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1980년대부터 시작된 유전자 감식기법은 피해자나 목격자의 증언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재판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위증이나 증거조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먼 재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디케의 눈>에서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 1984년에 일어난 '제니퍼 톰슨의 강간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유전자 감식


스물 두 살 여대생 제니퍼는 아파트에 침입한 괴한에게 강간을 당했고, 경찰조사에서 로널드 코튼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코튼은 범행을 부인했지만, 제니퍼의 증언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는다. 수감생활 중에 우연히 진범을 알게 되어 재심을 청구하지만  법정에서 진범은 범행을 부인했고, 제니퍼 역시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진술한다. 감옥에 갇힌 지 11년 후에 유명한 O. J. 심슨 재판을 보던  코튼은 유전자 감식을 요청했고, 마침내 진범을 가릴 수 있게 됐다. 두 번이나 코튼을 범인이라고 지목한 제니퍼의 착각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11년이나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전자 감식은 20세기 초반에 지문으로 범인을 확인하는 방법이 알려진 이후 가장 획기적인 수사기법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 누명을 벗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유전자 감식기법이 일반적으로 활용되면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사건은 미국에서만 100건이 훨씬 넘는다. 그중 상당수는 강간, 살인과 같은 무거운 죄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죄수였다."(본문 중에서)


형사재판 과정에서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목격자나 피해자가 착각을 하거나 잘못 기억해 억울한 재판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유전자 감식기법을 통해 성폭력범죄의 잘못된 판결이 밝혀지고 있지만, 다른 사건에서도 그만큼 오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에 경험한 사건 중에서도 친형의 이름을 사칭하고 다니면서 마약 강간 범죄를 저지른 동생 대신에 잡혀온 형을 피해자가 진범으로 착각한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아무런 숨은 의도가 없이 겪은 일을 기억나는 대로 말했지만 억울한 사람이 옥살이를 할 뻔했다는 것.


법은 깨어지기 쉬운 유리와 같아서 다루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진실은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으며, 당연한 듯 보이는 결론에 대해서도 다시 의심하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세일럼의 마녀 재판'과 같은 황당한 재판이 수없이 있었다는 것을 자주 잊어 버리며, 법정에서는 오직 완전한 '진실'만을 다룬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다는 것. 


지은이는 신대륙에서 일어났던 세일럼의 마녀재판과 함께 동서 냉전 와중에 있었던 로젠버그 부부 스파이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재판과 같이 종종 사회적 약자들이 억울한 희생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진상을 확인하지 않고 음모론에만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있어 잘못된 재판이나 판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 


따라서 항상 판단에 앞서서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서 '진실'을 파악하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며, 늘 경계하지 않으면 실체적 진실을 놓치는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체적 진실과 범죄의 재구성


한편, 금태섭이 쓴 <디케의 눈>에는 'LA폭동과 두순자 사건'을 통해서 죄를 저지른 사람을 얼마나 무겁게 처벌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두순자 사건 재판에서 검사는 피의자를 가볍게 처벌하면 흑인사회의 발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면서 법정최고형을 구형하였지만, 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불행하게도 1년 후 실제로 LA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많은 한인들이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그렇지만, 개인에 대한 형벌은 사회적인 목적달성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판사의 선고가 옳았다는 것이다. 


두순자 사건이 녹화된 CCTV를 보면서 지은이는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에 의해 재구성되는 사건의 모습과 실제로 벌어진 일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또한 국내 도입을 앞둔 배심원 재판을 소개하는 '패리스 힐튼의 교통사고' 이야기, 그리고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권리를 확립한 이른바 '미란다 원칙'이 만들어지게 된 미란다 재판 과정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미란다 재판은 피의자에 대한 권리의 인정을 넘어서 그것을 설명해야 할 의무를 부과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고 한다. 


당시 많은 검사와 경찰들이 앞으로 수사가 불가능해질 것이고 흉악범이 처벌 받지 않고 풀려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하지만 미란다 역시 풀려나지 못했고 목격자 진술을 증거로 다시 기소 당했으며 10년을 복역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유도심문을 통한 자백의 법적인 효과를 다룬 '경찰차 뒷 자석에서 생긴 일', 태형이 이루어지는 싱가포르, 그리고 개고기 법제화 논쟁, 가정의례준칙, 사이버 포르노 문제, 무보수를 공약과 선거법 위반, 창조론과 진화론을 둘러싼 법정 공방 등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디케의 눈>에 흥미를 더해주는 것은 법률가로서 금태섭의 경험이 담긴 실감나는 사례들과 뚜렷한 쟁점을 보여주는 판례들때문이다. 지은이는 <한겨레>신문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칼럼을 연재하여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으나 단 1회 연재로 끝나 아쉬움을 더했었다. 


당시 칼럼에서 지은이는 "첫째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둘째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고 충고하였다. 한겨레 칼럼에 못다 쓴 이야기가 담긴 <디케의 눈>이 독자들의 궁금증을 말끔히 풀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디케의 눈 - 10점
금태섭 지음/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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