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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과거로 떠나는 느릿느릿 기차 여행길

남도여행법.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여행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을 운영 중인 김종길의 여행기입니다. 김종길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연속 다음-티스토리 우수 블로거로 선정됐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오마이뉴스>에서도 그의 여행기를 자주 접했습니다.


<남도여행법>은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전선 여행기입니다. 경전선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철도인데, 경남 밀양 삼랑진역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300km에 이르는 남도의 크고 작은 여러 지역을 지나는 기찻길입니다.


"1903년 삼랑진과 마산포를 잇는 공사를 시작으로 1905년 마산선이 운행을 시작함으로써 지금의 경전선이 비롯되었다. 그 후 1925년에 마산과 진주, 1930년에 광주송정과 순천, 1968년에 진주와 순천을 잇는 경전선이 완성되면서 경전선은 그 이름에 걸맞게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는 기차가 되었다." - <남도여행법 中>


경전선은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엔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인기있는 교통수단은 아닙니다. 지금 사람들이 경전선을 외면하는 까닭은 이 길을 달리는 무궁화호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고속철도인 KTX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철도 구간 구간 나란히 달리는 남해고속도로 위의 자동차와 비교해도 무궁화 열차는 느릿느릿 달립니다.


가장 느린 기차로 떠나는 여행


저자는 느린 기차가 달리는 '경전선'에 주목했습니다. 가장 느린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지요. 경전선을 타고 떠나는 오래된 마을을 향한 과거로의 시간여행.


"제아무리 고속철도가 들어와도 구불구불 느릿느릿한 경전선의 매력을 앗아갈 수는 없다. 수  많은 간이역이라는 섬을 하나하나 이어주며 서두르지 않고 오늘도 제시간에 역사에 들어서는 정직하고 믿음직 스런 경전선이다." - <남도여행법 中>


시골 마을을 지키는 촌로나 이용하는 줄 알았던 경전선. 여행자는 이 경전선을 '서두르지 않고 제 시간에 역사에 들어서는 정직하고 믿음직한' 교통수단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삶의 흔적을 좇는 그의 여행법과 딱 어울리는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업화 시절 절정기를 맞았던 경전선이 오늘날 속도 경쟁에 뒤처지는 까닭은 기차가 지나가는 남도의 도시와 시골역을 잇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도의 도시와 시골마을에 빠른 속도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오래 전부터 마산서 기차를 타고 광주송정역이나 목포역까지 여행을 떠나리라 마음먹고 있었지만 끝내 다녀오진 못 했습니다. 늘 기차보다 빠르고 편리한 승용차를 택한 까닭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 시절, 바빴던 일상의 삶처럼 여행조차 늘 바쁘게 다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종길의 경전선 여행은 다릅니다.


느리기 때문에, 놓치지 않는 것


"경전선 여행은 좀 더 느린 방식의 여행, 떠나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여행, 일체의 근심걱정을 떨칠 수 있는 여행이다. 한적한 간이역과 기찻길 옆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오일장, 덩그러니 팽개쳐 있는 이 시대의 문화유적을 보며 스스로 치유하는 길이기도 하다."-<남도여행법 中>


경전선이 막 건설될 무렵엔 무려 60여 개의 역이 있었다고 합니다. 책을 펼쳐 들고 여행자의 발걸음을 쫓다보면 사연과 역사를 간직하지 않은 역이 없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역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역도 있습니다. 문학작품의 배경이 됐던 곳도 있지요.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길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100년 전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길과 건축물이 남아있는 곳도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입니다. 100여 년 전 도시와 마을에 철도가 놓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지금처럼 시간에 맞춰 살기 시작했습니다. 기차가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정확한 시간에 맞춰 사는 사람보다 그냥 때에 맞춰 사는 이가 많았습니다.


과거처럼 시간을 잊은 경전선 여행길. 그래서인지 곳곳에 근대 문화 유산을 찾아갈 수 있는 역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근대 문화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을 엿볼 수 있는 지역도 많이 지나갑니다. 옛 모습을 간직한 경전선의 역들은 그 자체로 이미 근대 문화유산입니다.


저자 서문에서 밝혀 놓은 유명한 문학작품의 배경은 모두 경전선을 지나는 역들입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 김승옥의 <무진기행>, <등신불>의 배경이 된 다솔사,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로 이어지는 하동, <무소유> 법정스님의 불일암,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벌교가 모두 경전선에 걸쳐있습니다.


6부로 구성된 <남도여행법>은 마산선, 진주선, 섬진강의 동쪽, 섬진강의 서쪽, 광주선1, 광주선 2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자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기차가 서는 30개의 역에서 각각 내려 경전선과 멀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여행을 다녔다는 군요.


기차서 내려 다시 버스타고 걷고... 남도의 '느린 여행'


30여편의 여행기를 다 소개할 순 없는 노릇이니 책에 담긴 역 중 가장 마음에 닿는 역만 멈춰가며 간략히 소개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광주까지 이어지는 경전선의 출발역이면서 1903년 경전선 공사가 처음 시작됐던 삼랑진역입니다.

 



경전선과 경부선이 만나는 삼랑진역은 부산과 대구의 중간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경전선을 타고 삼랑진역에서 기차를 바꿔타야 서울까지 갈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도여행법>에는 그 시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터뷰가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밀양은 여기에 비할 거도 아니었제. 사람들로 미어터졌어요. 기차가 설 때마나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어. 돈요, 길에 깔린 게 돈이었어. 여관도 엄청 많았고..."."-<남도여행법 中>


삼랑진 역에서 내린 여행자는 이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에 빠졌다고 합니다.

 

"반듯한 역사와는 달리 옛날 영화 촬영지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직도 일본식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가옥이 더러 보인다.......철도 관사는 일부 변형이 됐지만, 지금도 옛 가옥과 골목의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어 철도 교통의 주심으로 번잡했던 옛 삼랑진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 <남도여행법 中>


사람냄새 물씬나는 삼랑진 오일장 풍경 그대로


저자의 눈앞에 펼쳐진 삼랑진은 지금의 모습뿐 아니라 옛 모습도 함께 펼쳐집니다. 사진 작가로 나서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멋진 그의 사진들은  과거의 흔적을 지금의 모습과 함께 보여줍니다. 

 

<남도여행법>에는 수시로 현지인들이 등장합니다. 여행자는 곳곳에서 옛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과 자주 만납니다. 사전에 약속된 만남이 아닙니다. 거리에서 쉬고있는 택시기사, 골목에서 만난 할아버지 등. 그의 여행기를 풍성하게 해주는 인터뷰이들입니다. 


한 편 한 편 여행 이야기마다 빠지지 않는 건 바로 사람의 흔적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바로 시골장입니다. 여행자는 부지런히 사람 사는 흔적이 가득한 시장을 찾아갑니다. 삼랑진 여행에서 찾은 곳은 송지시장입니다.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 송지시장을 찾아간 여행자는 독자들에게 '장어도시락'이란 별난 음식을 소개합니다.

 

"통영의 충무 김밥이 뱃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면, 이곳 장어 도시락은 기차여행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교통의 요지라 워낙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장어가 상하지 않도록 훈제해 밥과 함께 도시락에 넣어 허기진 여행객들에게 내팔던 음식이었다."-<남도여행법 中>


삼랑진 역으로 떠난 첫 번째 여행은 8km를 걸으면서 철도관사, 송지시장, 삼랑진 성당을 거쳐 오우정과 삼강사비, 작원관지를 둘러보는 일정입니다. 그의 여행에는 역사탐방과 도시탐방, 문화유산답사, 생태기행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깃든 순천역의 불일암


또다른 <남도여행법> 맛보기는 법정스님의 흔적을 찾아간 순천역 편입니다. '무소유의 달엔 맑고 향기로운 불일암을 찾으세요'라는 제목의 여행기입니다. 미국의 원주민들이 12월을 '무소유의 달'이라고 불렀다는 데서 착안해 붙인 제목이랍니다.


"소박했던 옛 표목에는 불일암의 머리 글자를 따서 'ㅂ'과 암자가 있다는 뜻의 연꽃모양과 가는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마치 인두화처럼 소박하게 새겨져 있었다." - <남도여행법 中>


여행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옛 표목 사진을 담았습니다. 불일암을 찾는 사람이 지금 만큼 많지 않았던 때에 찍어 둔 사진인 모양입니다. 저자가 묘사한 불일암 가는 길을 한 번 옮겨 보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불일암을 가보지 않은 독자들도 머릿속에 불임암 가는 길을 그릴 수 있습니다.


"졸졸졸 맑게 흐르는 개울에 걸친 통나무 다리를 건너자 향기로운 숲이다. 그 사이로 옅게 길이 보인다(중략)편백숲이 끝나자 하늘로 쭉쭉 뻗은 대숲이 어지럽다(중략)사립문을 지나면 조릿대가 터널을 이루어 신비감을 준다. 그것도 잠시 어둑어둑한 조릿대길이 갑자기 훤해지는가 싶더니 고즈넉한 암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남도여행법 中>


법정스님이 기거하셨던 불임암 '하사당'에 대한 묘사도 함께 곁들였습니다.


"하사당은 볼 때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림을 준다. 더 이상 간결할 수 없는 경지라고나 할까. 꼭 필요한 그만큼만 가진 무소유 건물의 전형이 아니가 싶다. 부엌 하나, 방 하나, 장작더미, 장독대." - <남도여행법 中>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집이 또 어디 있을까요? 여행기의 끝자락엔 불임암의 유래를 잊지 않고 덧붙입니다. 여행자의 길을 따라 <남도여행>을 나서는 독자들을 위한 작은 친절입니다.


<남도여행법>은 저자의 걸음을 쫓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여행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여행안내서만은 아닙니다.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사라져 가는 것들과 잊혀져 가는 것의 기록입니다. <남도여행법>은 로드다큐이자 인문지리서이기도하고, 문화기행서이면서 철도여행서입니다.


남도여행법 - 10점
김종길 지음/생각을담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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