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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 삼라만상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


[서평] 야마오 산세이가 쓴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7200년 된 삼나무를 보러 야쿠시마에 다녀오면서 야마오 산세이라고 하는 구도자이자, 시인이며 농부로 살다간 그의 삶과 철학에 매료 되었습니다. 짧은 야쿠시마 여행을 다녀 온 후에도 야마오 산세이 읽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하였던 <여기에 사는 즐거움> <어제를 향해 걷다> <더 바랄게 없는 삶>에 이어 오늘은 <애니미즘니라는 희망>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1999년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닷새 동안 오키나와의 류큐대학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아마도 국내에 번역된 책 중에서는 가장 최근 작인데, 일본에서는 저자가 생을 마감하기 약 2년쯤 전(2000년 무렵)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저자가 지구별을 떠난지 10년 쯤 지난 2012년에 출간 되었더군요.


앞서 소개하였던 다른 세 권의 책은 대체로 일기 형식으로 씌어진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는데, <에니미즘이라는 희망>은 자신의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철학, 역사, 문화, 종교,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풀어내는 인문학 강의 같은 책입니다.


애니미즘....삼라만상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주제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애니미즘'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자급자족을 꿈꾸며 도쿄에서 야쿠시마로 귀농한 농부이자, 시인이며 또한 철학자이자 구도자의 삶을 살아온 저자는 말년에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에니미즘'을 주창하였던 모양입니다.


"아니마(anima)라는 라틴어의 의미는 생명이나 정령, 혹은 영혼인데 이 중 영혼이라는 의미가 가장 강할지 모르겠어요. 자연만물이에는 아니마가 깃들어 있다, 정령 혹은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 방식이 곧 애니미즘입니다." - 본문 중에서


애니미즘은 아니마라고 하는 라틴어가 어원이며 요약하자면 자연만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이 바로 에니미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종교사적으로 이해하자면 에니미즘은 샤머니즘보다 전 단계에 해당한다고 하였더군요.


"삼라만상 안에는 생명이고 정령이며 영혼인 아니마가 깃들어 있지요. 그런 원초적 심성을 애니미즘이라고 합니다. 즉 삼라만상에는 아니마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 바로 애니미즘이지요." - 본문 중에서


저자가 다시 한 번 요약해놓은 애니미즘의 정의입니다. 한편 애니미즘의 어원인 아니마라는 말에는 심리학자 융이 고안한 "남성의 잠재의식 속에 깃들어있는 여성적인 것에 대한 동경의 원리"를 말하는 개념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이라는 말도 '아니마'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니메이션 "수 많은 그림 한 장 한 장을 이어서 살아있는 것처럼 화상을 구성하는 거니까, 애니메이션이란 생명 또는 영혼을 부여받은 화면"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에 재생된 아니마의 세계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로 상징되는 에니메이션이라는 방법론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저자는 시를 함게 읽고 그 시들을 설명하고 배경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애니미즘'에 관한 이야기를 닷새 동안 풀어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야마오 산세이의 자연철학을 총정리한 책이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신에게 간구하던 것이 노래와 시의 기원


애니미즘에 관한 저자는 시가의 기원, 노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일본의 권위있는 한자 기원학자인 시라카와 시즈카 교수의 글을 인용하면서 "신에게 무엇무엇을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바로 노래의 기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컨대 저자의 경우 자기안의 절절한 외침을 절제되고 정갈한 언어로 정착시키는 것이 바로 시(詩)를 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그는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기 위하여 독일 작가 노발리스라는 시인이 쓴 단편소설 <파란꽃>의 서문을 소개합니다.


모든 시적인 것은 동화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전한 동화 작가는 미래의 예언자다. 

모든 동화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저 고향세계의 꿈이다.


저자는 수강생들에게 이 문장은 꼭 기록해두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문장이 갖고 싶어 헌책방에서 2천엔이나 주고 절판된 이 책을 샀다고 하더군요.


"말이라는 것이, 자기 가슴으로, 영혼으로 깊이 파고드는 말이 단 한줄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평생의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이죠." - 본문 중에서


영혼을 파고드는 단 한줄의 말을 보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니 그는 시인이 분명합니다. 말을 평생의 보물로 삼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겠지요. 저자는 노발리스의 글을 설명하면서 사람은 "누구라도 한 줄 정도는 진실의 말을 쓸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말하자면 동화처럼 가슴에 닿고, 영혼에 닿는 진실하고 소박한 말이 바로 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바로 자신의 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강의는 <야자잎 모자 아래서>라는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 강연을 글로 읽는 것이구요.


첫 번째 시는 <저문 강변의 노래>라는 시인데, 이 시에는 "신을 구하여 울어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은 바로 이 말에 이끌려 살아온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신은 영어 대문자로 표기하는 'GOD'가 아니라 소문자로 표기하는 'god'라고 강조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소문자 'god'는 사실 영어표기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제가 만들어낸 겁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위안을 주는 것이 소문자 'god=신'이고 나한테 좋은 것이면 무엇이든  'god=신'이다 ! 아름다운 것은 모두 신이고, 기쁨을 주는 것도 무엇이든 신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천지만물 삼라만상에는 모두 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의 이야기는 바로 그 신이 깃들어 있는 자연만물의 기초는 물이고 흙이라는 말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인류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우주 공간에 새로운 지구를 만들려는 무모한 짓을 그만두고 지구를 소중히 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7200년 된 삼나무 조몬스기 ⓒ 이윤기


그의 인생을 바꾼 나무 한 그루 '조몬스기'


이 책은 모두 15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겨우 첫 장에 대해 소개하였는데 글이 이렇게 길이졌네요. 두 번째 장의 제목은 '내 인생의 나무 한 그루'입니다. 최근에 제가 쓴 여행기나 서평을 읽은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내 인생의 나무 한 그루'는 바로 '조몬스기'입니다.


저자는 조몬스기에 대한 시를 쓸 때 당시 116세로 최장수 인물이었던, 이즈미 시게치요라는 분을 생각하며 '성스러운 노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는 100세 혹은 90세를 넘긴 노인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스러운 노인'이라고 말합니다.


성스러운 노인


야쿠시마 산 속에 한 성스러운 노인이 서 있다

그 나이 어림잡아 7천 2백 년이라네

딱딱한 껍질에 손을 대면

멀고 깊은 신성한 기운이 스며든다

성스러운 노인

당신은 이 지상에 삶을 부여받은 이래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그곳에 서 있다

그것은 고행신 시바의 천년지복의 명상과 닮았지만

고행과도 지복과도 무관한 존재로 거기 서 있다


야쿠시마 여행기나 조몬스기를 소개하는 글에 자주 인용되는 야마오 산세이의 시 '성스러운 노인'의 일부입니다. 야마오 산세이는 여러 글에서 '조몬스기'에 이끌려 야쿠시마를 '본향'으로 삼아 살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이 책 13장에는 조문스기로 가는 길을 시로 쓴 연작시 '야자잎 모자 아래서 24'라는 제목의 긴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15쪽 분량으로 읽는데만 25 ~ 30분이나 걸리는 장편시입니다.


워낙 긴 시라 옮길 수 없지만 조몬스기까지 올라가는 시인의 심상과 풍경이 잘 담겨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 길을 따라 조몬스기까지 다녀 온 후에 이 시를 읽었더니 눈으로 봤더 그 숲과 길들이 심상에 맺혀 에니메이션처럼 펼쳐지더군요.


앞서 저자 야마오 산세이가 딱 세줄이 문장을 얻기 위해 독일작가 노발리스의 <파란꽃>을 샀던 이야기에 견주어 말하자면,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이라는 책은 '성스러운 노인'과 '야자잎 모자라아래서24>라는 시 두 편만으로도 책값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아니 책 값으로 이 책들의 값어치를 말하는 것이 불경(?)스럽기까지 합니다만 아무튼 조몬스기 오랫 동안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두 편의 시(詩)라고 생각합니다. 야쿠시마 여행을 떠나기 전 날 30여 분동안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조몬스기가 살고 있는 야쿠시마의 숲은 수 천년 된 삼나무들이 수천 그루나 살고 있는, 삼나무 나이테 속에 지구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숲입니다.


▲  야마오 산세이의 서재 ⓒ EBS


읽는데만 30분이 장편 시...조몬스기를 노래하다


이런 곳에 살았던 야마오 산세이는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에도 다른 책들에서 강조하였던 시간에 대한 성찰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현대인들을 '진보하는 시간에 자신을 빼앗기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진보하는 문명의 시간이란 과거에서 미래로 상승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직선으로 진행하지 결코 물러서진 않습니다." - 본문 중에서


현대라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 특히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조몬시대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불가역성을 신뢰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삶을 규정하는데 직선의 시간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 합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자전하고 자전하면서 조금씩 태양주위를 공전하죠. 지구도 하루에 한 번 자전을 하면서 태양 주변을 일년에 걸쳐 한 바퀴 돕니다. 태양계 시스템은 태양계가 우주에 생겨난 46억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눈곱만큼도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같은 길을 회귀할 뿐이고 순환할 뿐이죠" - 본문 중에서 


또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생노생사의 흐름도 결코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모든 생명은 1만년 전에도 태어나면 죽었고, 1만 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사람의 육체와 의식은 회귀하고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야마오 산세이는 우리시대의 사회불안과 사회병리는 이 두시간의 상극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순환의 흐름속에 있으면서 순환하지 않고 진보하는 시간에 예속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극'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표중 하나가 바로 자살률이라고 강조합니다. 진보하는 시간에게 자신을 빼앗긴 나머지 자신의 인생과 문명과의 상극속에 죽음을 택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순환하는 시간, 회귀하는 시간에 주목하라 !


저자는 직선의 시간, 진보하는 시간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시간', '회귀하는 시간'을 지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살우리를 둘러 싼 세계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하루하루 다음 사회, 다음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거기에 쏟아붓기를 바랍니다." - 본문 중에서 


이 인용문은 닷새 동안의 긴 강의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문장입니다. 우리의 삶은 삼라만상 즉 자연에 속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은 말년의 야마오 산세이가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강연하였던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오늘까지 소개한 4권의 책 모두 좋은 책들입니다만, 딱 1권만 읽겠다고 하면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을 추천합니다. 제게 야쿠시마는 앞으로도 영원히 '조몬스기'와 '야마오 산세이'의 섬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 10점
야마오 산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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