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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옛애인 이름 검색...당신은 안해 봤나요?

[서평]관계에 서툰 남자 엣세이, 호무라 히로시가 쓴 <세계음치>


순전히 <세계음치>라는 제목 때문에 고른 책입니다. 저자 호무라 히로시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세계음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 음치인지, 음치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서 구입한 책입니다. 


음치의 세계가 궁금했던 것은 제가 '음치'이기 때문입니다. 박자를 못 맞추고 높낮이를 무시하고 겨우 가사만 틀리지 않게 부를 수 있는 이른바 '음치'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못하지만 듣는 것도 즐겨하지 않습니다.


차를 운전 할 때도 음악보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최근에는 팟캐스트를 골라 듣습니다. TV를 봐도 음악 방송보다는 여럿이 나와 수다 떠는 예능프로그램을 더 좋아합니다. 노래를 못 부르면 많이 듣기라도 해야 좀 나아질텐데, 듣는 것조차 싫어하니 음치 탈출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세계음치>는 저 같이 노래를 못 부르는 사연이 담긴 책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세계음치 '이야기가 나오는 단락을 찾아 먼저 읽었습니다. 목차가 없는 수필집이라 여러 차례 책장을 주르륵 넘기면서 일부러 '세계음치' 찾았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노래 못 부르는 음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제가 보기엔 노래 못하는 '음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실망스런 마음이 들어 읽지 않은 책을 모아두는 책꽂이에 올려놨습니다. 한 1년쯤 세월이 흐른 지난 일요일 읽지 않은 책들을 뒤적이다가 <세계음치>라는 제목이 다시 눈에 띄었습니다. '음치'이야기는 아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 펼쳤습니다.


노래 못하는 음치 아니라 세계와 관계 서툰 음치 이야기


1년도 넘게 지났지만 역시나 제 관심은 '음치'에 있었기에 '세계음치'부터 찾아 읽었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읽어보니 노래를 세계에서 제일 못하는 음치가 아니라 세계(상)와 관계 맺기를 제대로 못하는 자신을 '세계음치'라고 하였더군요.

"지난 번에 <세계음치>라는 제목으로 '자연스러움'을 지니지 못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의 괴로움에 관해 썼다. 술자리와 초밥 가게 카운터를 예로 들었기 때문에 '세상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은 타인과의 거리감을 가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만이 '세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의 전부는 아니다."(본문 중에서)

세상과의 관계 맺기가 서투르고 특히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특히 서투른데 그 뿐만 아니라 물리적 세계와의 관계 맺기도 서툴다고 하더군요.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듭니다. 몇 년 전에 집에 놀러온 친구가 "공기가 안 좋네, 창문 열게" 하더니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그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지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 곳에 산 지 14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내방 창문이 열리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다. 방에 창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창이 열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공기가 나빠 숨쉬기 힘들었다고 생각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창을 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본문 중에서)


왜 한 번도 창문을 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귀찮아서도 아니고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나는 창문으로부터 가로막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15년 동안이나 그 방에 살고 있으면서 한 번도 창문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15년 동안 창문을 한 번도 열지 않은 '세계음치'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창문을 열고 닫는 일 뿐만 아니라 그는 매사가 남보다 늦기 때문에 심지어 여름옷을 꺼내 입는 것도 남들보다 하루가 늦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름 옷을 입은 걸 보고 나서야 비로소 여름옷을 꺼내 입는다는 것이지요.


흔히 사람들은 그가 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는 끝없이 남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여름옷을 입기 시작하지만 그는 남들이 여름옷을 입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스스로 '자연스러움을 빼앗긴 사람'이라고 말 합니다. 그는 세계와 단절된 '세계음치'라는 겁니다. 노래와 단절된 노래음치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세계음치>를 쓴 호무라 히로시는 단카 시인이자, 평론가이면서 에세이와 그림 책 번역 등 여러 활동을 하는 작가입니다. <세계음치>는 저자가 니혼게자이 신문에 연재되었던 에세이를 모아 엮은 책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저자의 자기소개를 볼까요?


"나는 현재 38세로 회사 명함에는 과장대리라고 직함이 적혀있고, 벤치프레스로 107.5킬로를 든 적이 있으며, 몇 권인가 책을 냈고, 닛케이 신문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세계음치>에 담긴 에세이들은 대부분 저자의 자기 이야기입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미혼으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샐러리맨이 세상에 자연스럽게 적응하지 못하고 위화감을 느끼면서 보내는 한심한(?)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초밥가게에서는 정작 먹고 싶은데도 먹고 싶은 것을 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밤중에 침대를 더럽혀가며 과자빵을 탐닉하며, 마시기만 하면 무엇이든 낫는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녹즙 비타민을 복용하고, 어느 날은 인터넷에서 그동안 사귀었던 옛 애인의 이름을 차례대로 검색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이 없으신가요?


몇 가지 예를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건강검진에서 중성지방 수치가 엄청나게 높게 나왔지만 단팥빵 앙금을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거나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책을 사 모은다거나 비타민을 먹어도 몸이 좋아지는 것 같지 않은데도 먹어두는 일. 경험해 보시지 않았는지요?


인터넷에서 옛 애인 이름 검색해보셨나요?


연하장을 보내지 않으면서도 받은 연하장에는 답장을 하고, 받은 연하장 숫자를 세면서 관계를 가늠하거나 어느 날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에 당황하거나 마트에서 할인 상품을 손에 들고 작은 이득을 계산하느라 망설였던 경험은 혹시 없으신가요? 병원에서 수액이 떨어져 갈 때 간호사를 부를까 말까 망설여본 경험은 해보셨나요?


많은 일본 독자들이 호무라 히로시가 쓴 이런 에세이를 읽으면서 자기 이야기와 닮았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것이 잠자는 것이라거나 15년 동안 창문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은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저 역시 15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15년 동안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을 이사를 할 때마다 모시고 다닌다거나 어떤 물건은 어느 장소에 둬야 안심이 된다거나 어떤 물건을 잃어버리면 찾을 때까지 끊임없이 잃어버린 장면을 추적한다거나 심지어 끝내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똑같은 물건을 사야 직성이 풀리기도 합니다.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지요?


<세계음치>에 공감하는 까닭은 처음 읽을 때는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들인데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노래 못하는 음치들을 위로 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세계와 교감하는데 서투른 사람들을 위로 하는 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은 기겁하는 자기만의 단점이 있지만, 그걸 고치지 않고도 잘 살아가고 나만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됩니다. "독신, 38세, 외동, 부모와 동거, 총무과장대리"로 살아가는 단카 시인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단카는 5.7.5.7.7의 음수율을 가진 31자의 정형시로서 대대로 일본인의 마음을 담아온 전통적인 서정시"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독자들의 마음에 문을 두드리는 여러 편의 단카 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된장국이란 소중한 것이로다. 그저 덧없는 이번 세상에서만 먹는다 생각하면"


"초장기 일기예보에 따르자면, 일억 년 후의 내 생일의 날씨는 구름이 낀다네요."


"장어가 오고 오징어 문어 오고, 다시 장어가 오고 다음 빈 접시, 다음 참치 집어야지"


"내버려 진 채로 홀로 남은 안경이 모래밭에서 내리쬐는 빛 줄기 바라다보는 구월"


"밥 먹고 먹는 약 종류 열한가지 모두 열세 알, 하나 부족하구나 말하며 한숨짓다"


"아픔을 안고 세상의 바깥쪽에 서 있는 나와 붉은 속눈썹 안으로 말고 있는 석산꽃"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런 단카 시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에세이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유명한 단카 시인들의 작품과 저자가 쓴 단카 시들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건 '덤'인 것 같습니다. 그냥 "나답게 사는 것"이 힘겨울 때,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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