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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함께 몰락하는 신자유주의

[서평] 자크 사피르가 쓴 <제국은 무너졌다>


앨런 그리스펀은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컬어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위기'라고 말 하였다.

2006년 말 주택가격 급락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 위기는 지난 2년간 전세계 신용 경색과 금융 공황으로 확산되었다.


금융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위기의 폭발을 일으켰고, 글로벌 경제는 실물경제 붕괴라는 더 위험한 위기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까지도 순식간에 마이너스 성장국면으로 바뀌었고, 제조업 경기는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대책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고 있다.

"확산되어가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도저히 '시장의 자기 치유력'으로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2008년 9월, 미국의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 발의를 기점으로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시장의 실패'를 대신하여 국가가 해결사로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국가의 귀환'이 공식화되기에 이르렀다." (한국판 보론, 김병권)

이것은 IMF가 1990년대 남미와 아시아 외환 위기시에 강요했던 처방책과는 전혀 다른 해결책이다. 남미와 아시아에서 IMF가 요구했던 정책은 초긴축 정책과 재정 건전성 강화, 초고금리, 그리고 민영화와 고용 유연화, 작은 정부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그런데, 선진국들은 자국에 위기가 닥치자 재정지출 확대, 제로금리, 국유화, 고용보장과 실업 대책 확대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되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과거 한국 등이 겪은 외환 위기 과정에서 재정 적자 감축, 금융기관 민영화, 금융 긴축과 고이자율, (금융)규제 완화와 개방(자유화) 등을 주문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구조 개혁 프로그램과는 달리, 현 금융 위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정확히 반대로 재정팽창, 저이자율, 금융규제로 나아가고 있다."(한국판 보론, 김병권)

그렇지만, 현재 추진하고 있는 통화정책과 재정확대 정책으로 경제의 금융화와 금융의 세계화가 낳은 신자유주의의 최대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는 확신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지금 글로벌 경제 위기는 단순한 경기 순환 국면상 하강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구축되어온 신자유주의 시스템, 신종 금융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지닌 구조적 결함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시스템 위기이며,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한계로부터 발생한 위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국은 무너졌다>를 쓴 자크 사피르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스템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것이 아니라고 말 한다. 그는 지금 위기는 1997~1999년 국제금융위기가 시작될 때부터 잉태되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신자유주의 시스템 위기는 바로 제국의 위기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사태로 인하여 미국이 주도하여 다른 많은 국가에 강요했던 국제금융 자유화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미국의 정책은 실패하거나 거부당하였고, 신흥국가들은 금융자유화를 줄이고 부채를 축소하거나 규제를 도입함으로써 금융위기와 미국의 정책에 대응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와 21세기 초에 경험했던 미국의 경제성장은 상당 부분 허상이었으며, 경제는 성장하였지만 유례없는 소득 불평등 심화로 위기를 키워왔다는 것이다. 자크 사피르는 "2006~2007년 겨울에 발생한 후 점차 금융 위기로 확대된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스템 위기는 어떻게 보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한다.

오히려 더 심각한 일은 제국이 가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군사주의가 도래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신군사주의는 정치적, 외교적 실패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똑똑히 볼 수 있는 군사적 재앙을 낳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외교, 군사적 실패는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가 탈냉전 시대 최초의 국제안보기구인 '상하이 안보기구'로 견고해지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국은 세계를 지배해보지도 못한 채 추락하기 시작하였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같은 구강대국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강국들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크 사피르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미국은 전반적으로 약화되어 왔다고 한다. 이 말은 미국이 더 이상 강대국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미국이 제국의 권위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1991년 12월 구소련이 해체를 결정했을 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미국의 세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였지만, 10여년도 지나지 않아 제국에도 위기가 닥쳤다는 것이다.

"'미국의 세기'의 위기는 1997년 금융 위기 시작과 2005년 미국이 겪은 이라크 개입의 참담한 실패 사이에 발생했다. 즉 1997년부터 2005년까지 8년이야말로 결정적인 시기였던 셈이다. 이 같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상적 실패에 따른 결과는 엄청나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미국의 참담한 실패 원인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꼽는다.

①1997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은 자신이 원하던 방식으로 세계 경제를 통제하는 데 실패하였다.
②세계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가 도래하는데, 바로 시애틀과 제네바에서 열린 반 WTO시위와 지지부진한 도하 아젠다 협상은 상징적 사례다.
③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군사전략 역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정치적 고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④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자국의 세계 정책에 편입시키는 계획에 실패하였다.
⑤중국의 급부상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였고, 재군사화의 원인이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실패는 미국의 무능을 뛰어 넘는 더 근본적인 이유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화 위기라는 것이다. 예컨대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미국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결국은 신뢰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WTO의 침체 역시 미국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미국의 선택은 재군사화였지만, 코소보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라크에서 잇따라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온갖 거짓말을 바탕으로 시작되었고, 아울러 애국자법과 같은 공적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짐으로써, 결국은 보편적 가치에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라크 개입은 미국 헤게모니에 위기를 초해하였고, 전세계에서 미국의 신뢰를 더욱 약화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실패가 아니어도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성장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는 다극적 질서 체제로 변화하는 이행기에 있다고 한다. 예컨대 국제 통화질서의 분할과 다극성은 지역통화제도의 설립을 암시하는 일이라고 한다. 아울러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반드시 과도한 자산 유동화, 위험과 불확실성 심화를 유발하는 새로운 금융수단의 확산, 너무 자유로운 단기 자본이동에 대한 재검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제국과 함께 몰락하는 신자유주의 위기는 경제에 자리를 내주었던 국가와 정치가 복귀함으로써, 근본적 의미에서 정치적인 중재를 통해서 바람직한 세계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자크 사피르는 프랑스에서 처음 싹을 틔운 조절이론 전통을 이어받아 사회변동과 제도, 규칙의 역할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특히 체제 전환기 국가의 금융시장 분석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2001년 금융 경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연구자에 수여하는 틔르고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정부와 주요기업, 각종 국제기구의 동유럽 지원프로그램 자문관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또한 러시아 중앙은행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전문가 그룹에 참여하고 있으며, 러시아 에너지 산업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도 이끌고 있다고 한다.  저자인 자크 사피르는 경제학자이지만, 그가 쓴 <제국은 무너졌다>를 읽어보면 전쟁, 국제정치, 그리고
역사와 사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독특한 지식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제국은 무너졌다 - 8점
자크 사피르 지음, 박수현 옮김, 김병권 한국판 보론/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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