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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자전거 일주5] 눈 덮힌 한라산에서 컵라면 먹어 보셨나요?

네 번째로 소개하는 산방식당은, 앞 기사에서 소개한 3대 맛집에 비하여 결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이미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식당이다. 아마 여름에 자전거 일주를 했더라면, 이 집이 첫 손가락에 꼽혔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소개하는 음식은 이른바 맛집에서 먹은 음식은 아니다. 여행을 하며 재래시장과 정육점에서 사먹은 생선회와 흑돼지 바비큐도 기사로 소개할 만큼 맛있었다. 음식 맛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만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어 함께 소개한다.

쫄깃한 면발 '밀면'과 구수한 국물이 일품인 '고기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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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수육, 밀면, 고기우동. 딱 세 가지만 하는 집. 세상 모든 맛집이 가진 공통점은 여러 가지 메뉴가 없다는 것. 이 집도 마찬가지다. 문도 열기 전인 오전 11시에 도착했다. 이미 제주 여행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맛집이다. 수육 맛이 일품이라고 하는데, 채식주의자인 나는 먹어보지 않아 그 맛을 전할 수 없다.

문 열기 전에 식당에 들어가 30분 넘게 기다리자 밀면과 고기 우동이 나왔다. 밀면은 시원한 맛, 고기 우동은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밀면에는 돼지고기 수육 몇 점이 올려져 나오는데, 옆자리 일행에게 먹으라고 덜어주었다. 밀면 육수는 멸치로 우려낸 듯했는데 겨울이라 조금 춥게 느껴졌다. 대신 고기 우동은 국물이 뜨끈뜨끈해 겨울에 먹기 딱이었다.

밀면과 고기우동을 나눠서 시켜놓고 옆자리 동료와 함께 나누어 먹은 우리팀은 어느 것이 더 맛있다는 딱 부러진 결론을 짓지 못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겨울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떨었기 때문인지 따뜻한 국물이 좋았다는 쪽이 약간 우세했다. 돼지고기 수육 좋아하시는 분들, 밀면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딱 좋은 집이다.

우리가 밀면과 우동을 먹는 동안 홀에 손님들이 가득 찼다. 과연 이미 소문난 맛집이라는 것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된 맛집답지 않게 언제 지었는지 깨끗한 새 건물이다. 대정 초등학교를 찾은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매일시장 싱싱한 활어회, 인심 후한 야채 노점 할머니

지금부터 소개하는 곳은 '맛집' 반열에는 들 수 없지만, 나름대로 야박하지 않은 제주 인심을 잊을 수 없어 소개한다. 그래도 자전거 일주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는 나름대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한다고 소문을 냈더니 몇 년 전에 다녀왔다는 후배가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옆에 있는 OO마트에서 회를 사먹으면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그 말만 믿고 찾아갔는데, 그동안 회 값이 많이 올랐는지 가격에 비하여 전혀 푸짐하지 않았다.

급히 작전을 변경하였다. 쌀과 부식만 바구니에 담으면서 진열대 근처에서 일하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마트는 회 값이 비싼데 어디 가면 회를 살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서귀포 매일시장으로 가 보란다. 차를 타고 네비게이션에 매일시장을 찍어 회집 골목을 찾아갔다. 수족관에서 펄펄 살아 뛰는 놈들 중에서 돔, 히라스, 오징어 그리고 전복을 사와서 민박집에서 실컷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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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자전거 일주 두 번째 기사에서 이미 소개한 것처럼 숙소에 돌아와 회를 먹고 나선, 횟집에서 회를 뜨고 남은 생선머리와 뼈로 지리를 끊였다. 횟집 아저씨가 생선뼈와 머리를 담아 주길래 양념이 하나도 없어서 끓일 수가 없다고 했더니 "'지리'를 끓이면 된다"고 귀띔해 줬다. 그리곤 건너편 야채 파는 할머니에게 지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사가서 소금으로 간만 맞추면 될거라고 일러준다.

할머니에게 횟집에서 생선머리와 뼈를 주더라고 지리를 끓일 거라고 했더니 비닐봉지를 꺼내 무 하나, 청양 고추 다섯 개, 깻잎 한 줌, 미나리 한 줌, 마늘 열 쪽을 고루고루 담아 주었다. 가격은 모두 합하여 2000원만 달라고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생선뼈와 머리를 솥에 넣고 한소끔 끓인 후 할머니가 챙겨준 야채를 다듬어 넣고 간을 맞추었다.

그런데, 우리팀 모두로부터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들었다. 시원하고 맛있단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단 돈 2000원에 생선뼈와 머리를 넣고 지리를 끓일 수 있는 재료를 챙겨준 야채 노점 할머니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아무튼 매일시장 횟집에서는 OO마트보다 훨씬 푸짐하게 회를 살 수 있다. 그리고 횟집에서 챙겨주는 생선뼈와 머리는 건너편 야채 파는 할머니에게 재료를 사오면 맛있는 '지리'를 끓일 수 있다.

저녁에는 회를 먹고 나서 밥과 함께 찌개를 먹을 수 있고, 소주 한 잔하기에도 그만이다. 먹다 남은 지리는 아침해장으로도 그만이다. 저녁에 지리 두 냄비를 끓여서 한 냄비는 다음날 아침에 찌개 삼아 김치와 김을 반찬으로 밥을 먹었는데, 모두 맛있었다고 한다.

성산 일출봉 흑돼지 바비큐, 함덕 해수욕장 정식

성산일출봉 아래 펜션에서는 바비큐 도구를 빌려준다. 성산 농협 건너편에 있는 정육점에서 흑돼지를 사고, 농협에서 각종 야채와 쌈장을 사와서 돼지고기 바비큐를 해 먹었다. 숯불에 흑돼지 10kg과 고구마를 구워먹고도 모자라 통닭도 몇 마리 더 시켜서 숯불에 얹어 놓고 먹었다고 한다(참고로 채식주의자다). 나는 안 먹어 보았으나 다른 일행들에 의하면 분명히 보통 돼지고기보다 맛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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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비를 쫄딱 맞고 자전거를 타다가 함덕 해수욕장에 있는 '현우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 점심 식사 예정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동차로 뒤따르던 진행팀이 급하게 찾아낸 곳이다. 그냥 가정식 백반(정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종주 내내 이름 있는 음식만 먹었기 때문에 그냥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나오는 식사가 그리웠다. 이 곳에선 메뉴를 정하기 위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솔직히 음식 맛이 뛰어난 집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사장님 내외분 인심이 좋았다. 비를 쫄딱 맞은 우리팀을 기쁘게 환영해주었고, 밥 먹는 동안 난로에서 장갑과 양말을 말릴 수 있도록, 그리고 식사 후에 출발 때까지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다른 손님을 맞이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싫은 내색하지 않고 배웅해주었다.

제주 시내에 있는 '한국관'은 곱창전골과 불고기 전골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이 집 역시 채식주의자인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맛은 모르겠다. 고급스러운 식당인데도 초라한 대학생 단체 여행객들을 위하여 이것저것 자상하게 챙겨주시는 여사장님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제주에서 밥 먹으러 갔던 식당 중에서 제일 비싼 집이다. 비싼 식당에서 보장되는 가격에 비례하는 기본적인 맛은 보장되는 집인 것 같다. '싸고 맛있는'이라는 우리 기준보다는 조금 예산을 넘어섰지만, 젊은 친구들과 유쾌하게 말을 섞으며 다음 날 한라산 등반을 격려해주시던 사장님 때문에 소개에서 빠뜨릴 수 없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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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우리 팀이 들렀던 곳으로는 둘째 날 아침을 먹었던 한림읍 입구에 있는 몸국을 하는 해장국집이 있었는데, 이집은 정말 평가가 딱 반으로 나뉘었다. 선지와 해초가 들어간 몸국을 국물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우는 쪽과 서너 숟갈만 뜨고 고스란히 남긴 쪽이 맛에 대해서 서로 너무 다르게 평가했다.

첫 날 점심은 자전거 대여점 건너에 있는 국밥집에서 설렁탕을 먹었는데, 음식 맛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자전거 일주 출발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옷 갈아입기, 화장실 다녀오기 등)로 번거롭게 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아마 자전거 빌리는 사람들이 이 집에서 밥 먹고 출발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지 싶다.

그 외 사전 답사팀이 미리 확인해두지 않아 그냥 아무 식당이나 찾아들어갔던 첫 날 저녁 해물뚝배기 맛은 시장을 반찬 삼아 맛있게 먹었지만 기사로 소개할 만한 집은 못 된다.

'컵라면', 이보다 더 맛있을 순 없다!

한라산 컵라면은 맛이 다르다. 물론 육지에서 파는 컵라면이나 제주 시내에서 파는 컵라면이나 모두 똑같은 재료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온 사방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 진달래 대피소에서 김밥과 함께 먹는 컵라면 맛은 특별하다. 영화 <식객>에는 군대시절에 먹었던 라면 맛을 재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라면 맛의 비밀은 '춥고 배고픔'에 있다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새벽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고 시작한 한라산 등반길, 7km 이상을 걸어 올라간 진달래 대피소에서 먹는 1500원짜리 컵라면이 어이 맛있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가히 군대에서 먹던 봉지라면을 넘어서는 맛이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우리 참가자들에게는 아마 그동안 먹어본 라면 중에 최고의 맛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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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등반 시간에 쫓겨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컵라면 용기는 모두 비닐봉지에 담아서 배낭에 매달고 정상까지 다녀왔다. 등산가서 남들이 모두 김밥 먹을 때 산에서 먹는 라면 맛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하다. 밖에서 먹는 라면 맛은 추우면 추울수록 더 맛있어진다. 하물며 눈 내리는 한라산 중턱에서 먹는 컵라면 맛이야 어디에 비할소냐 !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맛이다.

4박 5일 동안 자전거로 제주를 한 바퀴 돌면서 우리가 들렀던 식당, 먹었던 음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배려'와 '넉넉한 인심'이었다. 보통 관광지에서 느껴지는 어느 집이나 똑같은 음식 맛도 아니었고, 먹을 것도 없는데 밥값만 비싼 그런 집도 잘 피해 다녔다. 마치 내가 사는 도시에 오래된 맛집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열여섯 명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살갑게 맞아주는 곳만 골라 다닐 수 있었다.

힘에 겨운 240km 제주 자전거 일주와 한라산 겨울 등반을 해냈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재미 덕분에 참가자 모두에게 훨씬 더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 이 글은 2008년1월 25~29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한 '예비대학생과 함께 하는 자전거 제주 일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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